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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놀라 홈즈] 진정한 페미니스트로의 성장

문학도 2020. 10. 24. 00:24

 

[넷플릭스/에놀라 홈즈] 진정한 페미니스트로의 성장

 

넷플릭스 <에놀라 홈즈>를 보고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도 보게 되었다, <에놀라 홈즈>.

한참 신작으로 홍보를 할 때에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계속 망설여졌던 것이었는데

(나이가 드니 집중력이 짧아졌다. 1시간 30분 내외의 영화만을 찾아보게 된 지 오래다.)

막상 보기 시작하자 러닝타임이 길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휙, 휙, 지나가듯이 영화가 끝나 있었다.

제목에 들어간 '홈즈'라는 이름 때문에 추리물을 기대했으나 추리물은 사이드 메뉴.

메인 메뉴는 '에놀라 홈즈'의 성장, 즉 진정한 페미니스트로 한 발자국 더 나가는 과정을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에놀라 홈즈'의 얼굴이 익숙하다, 싶었더니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물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이었던 것.

<기묘한 이야기>의 시즌1부터 보아왔던 배우여서 그런지 그녀가 (실제로) 커가는 모습을 보니 잘 컸다, 싶었다.

'일레븐'보다는 '에놀라 홈즈'가 원래 그녀의 성격과 닮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잘 소화하는 모습 덕분이었을까.

 

 

 

 

 

 

<에놀라 홈즈>는 '페미니즘' 성향을 띄고 있다. 이 말에 벌써 얼굴을 찡그리진 마시라.

'페미니즘'라는 단어에도 얼굴이 찡그려질 만큼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의 의미는 많이 퇴색됐지만

<에놀라 홈즈>에서의 '페미니즘'라는 의미는 '진정한' 페미니즘의 의미니깐 말이다.

영화의 배경에는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던 페미니스트들의 역사가 깔려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수많은 여성들은 생각하기도 싫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에놀라 홈즈'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자신이 겪은 부당한 시대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 '변화'를 모색하는

페미니스트로 '에놀라 홈즈' 역시 그 모습을 따라 자주적인 여성, 아니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코르셋', 강제로 입어야 하는 여자들에겐 억압의 상징이죠. 하지만 저는 자의로 입는 거예요.

 

'페미니즘'의 의미를 퇴색시킨 이들에게 이 대사를 상기시켜주고 싶다.

머리를 잘라야만, 치마를 입지 않아야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자의라면 얼마든지.

하지만 누군가의 강요로, 사회적인 억압으로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어야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한 것이 바로 페미니즘인 것인데 몇몇이 자의와 타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페미니스트의 행동들을 고착화시키니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리게 된 셈이다.

 

여성도, 남성도 <에놀라 홈즈>를 통해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어떤 이들인지, 페미니즘은 왜 생겨났는지.

다시금 골똘하게 되짚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에놀라 홈즈>를 통해 이름, 아니 얼굴을 알린

'루이스 패트리지'의 얼굴을 감상하는 것 또한 하나의 감상 포인트가 될 터이니 심장을 부여잡기를.

<에놀라 홈즈>를 검색하게 되면 괜히 '남주'나 '튜크스베리'가 연관검색어로 뜨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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