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결말을 바라고 있었던 나

도서관에 들르면 늘 기웃거리곤 하는 일본 서적 책장. 보통은 추리소설을 고르곤 하는데(학생 때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열렬한 팬이다.) 책 표지에 그려진 귀여운 삽화에 끌려 빌려온 책이다.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이라니 마치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이 사람과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남자와 여자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빠져들었다는 흔하디 흔한 러브 코미디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런 예상과는 달리 묵직한 한 방을 선사했달까? 이 책은 남에게 연애 감정을 품지 않는 '에이로맨틱'과 남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 '에이섹슈얼', 그리고 둘 다인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까지 다루는 즉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였다. 보통의, 아니 보편적인 성적 지향인 이성애를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 책의 두 주인공인 고다마 사쿠코와 다카하시 사토루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사실 불가능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렇구나.'라고 동조해 줄 수 있는 정도지 그들이 보편적이지 않은 성적 지향을 가지고 살아온 나날들과 시선을 모두 '알겠다.'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기만이 아닐까?
고다마 사쿠코와 다카하시 사토루는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로 성인이 되어서야 자기의 정체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친구들이 '이상형이 뭐야?'라고 물어도 도저히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인데 본인은 속이 시원해지었을망정 가족들은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그렇지 않다.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상하다고 치부해 버리며 정상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라니, 책을 통하여 그 둘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도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이기적인 결말을 바라고 있었으니 첨언할 자격은 없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그들이 서로 맺어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나 또한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지인1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때는 취업, 이때는 결혼, 이때는 출산,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아야지만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믿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혼이나 딩크 등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고 그 또한 사회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 지향에 관련해서는 아직도 '혼동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에이로맨틱 에이섹슈얼'처럼 누군가에게도 로맨틱한 감정과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는 성소수자의 경우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자식의 결혼 및 출산을 고대하던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면 생채기가 생길 일도 없어야 맞다. 그러나 모든 성적 지향이 그러하냐는 질문에는 글쎄, 대답하기 난감하다. 극단적인 예로 소아성애와 같은 경우에는 범죄이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이 성적 지향에 관련해서 우리 사회는 아직 '혼동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아 그 누구도 어디까지는 이해해주어야지만 어디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선을 분명히 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변해가는 사회에서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을 읽어 보는 것을 권해주고 싶다. 가슴으로는 힘들지만 머리로는 알아가려고 하는 가즈 군처럼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면 말이다.
- 저자
- 요시다 에리카
- 출판
- 아르테(arte)
- 출판일
-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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