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되어가는 것이다

어렸을 땐 얼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를 닮은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살고 싶었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결혼과 출산은 나에게서 머나먼 일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아졌다. 나날이 높아져가는 집값과 결혼식 비용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건 물론 우여곡절 끝에 임신해 출산을 하게 되더라도 조리원 비용부터 요즘은 기본이라는 영어 유치원,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드는 사교육비를 내려고 하면 정말이지 '내'가 아닌 '엄마'로서의 삶밖에 남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능력이 없으면 안 낳는 게 맞다'라는 말이 당연시되는 사회, 그 속에 살아가다 보니 한국이 저출산 국가가 되어가는 것에 놀랍지도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만나게 된 영화가 바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였다.
'아버지'하면 사전적 의미인 '자기를 낳아 준 남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만 하기에는 다가오는 느낌의 깊이가 다르다. 요즘은 맞벌이를 하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점점 퇴색되고 있긴 하지만 90년대생인 나에게는 아직까지 '가정의 중심'이 되는 굳건함과 그로 인해 동반되는 든든함이 느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우리 가족에게 닥쳐오더라도 아버지가 있다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런 느낌을 나에게 주기까지 아버지도 서툴었던 때가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영화를 보며 부모님이 지금의 부모님이 되시기까지 얼마나 어려웠을지 감히 짐작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역할을 좋은 학벌을 가졌다고, 좋은 회사를 다닌다고, 혹은 잘생겼다고 잘 해내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니깐.
그야말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료타. 그의 아들이 알고 보니 병원에서 뒤바뀌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데 '역시 그랬었군'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걸 보면 어쩌면 그는 놀람과 동시에 안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승부욕이 없어 도통 늘지 않는 피아노 실력에도 뛰어난 친구를 바라보며 '잘하지?'라며 감탄하는 케이타, 사실은 아버지의 칭찬을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싶어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아이지만 완벽한 자신과는 거리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알고 보면 그는 어릴 때 피아노를 치다 그만둔 적도 있으면서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을 수 있지만 부모든, 아이든 서툴었던 첫 순간은 있다. 그게 육아든, 피아노든, 어떤 것이든지 말이다. 그 사실을 깜박하고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에 대해 늘 자문하곤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부모일 텐데 말이다. 왜 아이를 낳아 경제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손해를 봐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만 한정 짓기보다는 '육아'이라는 과정 속에서 '아이'에게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나' 또한 배제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을 통하여 인간으로서 아직 더 성장할 기회를 '아이'가 '나'에게 주는 것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후회를 하는 순간들도 분명 맞닥뜨리게 되겠지만 그만큼 더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과 보람은 낳아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가 되고 싶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면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어떤 일이든 '시간'은 존재하는 법이니깐.

여담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료타 역을 맡은 후쿠야마 마사하루를 보며 정우성과 닮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특히 옆모습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헷갈릴 정도였다.) 다들 생각하는 게 똑같은지 '일본의 정우성'으로 유명하다고-
- 평점
- 8.6 (2013.12.19 개봉)
-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 출연
- 후쿠야마 마사하루, 오노 마치코, 마키 요코, 릴리 프랭키, 니노미야 케이타, 황 쇼겐, 후부키 준, 쿠니무라 준, 키키 키린, 나츠야기 이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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