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줄] 나는 무엇을 위해 줄에 서 있는가
최정례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p.23, <줄>을 읽고
강렬한 빨강과 파랑이 뒤섞인 태극기를 연상케 하는 표지의 색깔과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라는 제목의 시집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익숙하지 않은 구절과 시인의 이름, 그럼에도 '읽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난해하다고 생각되리만큼 어려운 시집이었으나 꽂히는 시가 있었다.
바로 <줄>. 20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 그리고 같은 또래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시는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내 해석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해석하기 어렵기도 하고) 그러나 함께 나눠보고자 글을 써본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첫 행 '사람들이 뛰고 있었다. 나도 뛸 수밖에 없었다.'에서 우리의 인생이 떠올랐다.
모두들 저 멀리 뛰어가는 사람들을 바싹 쫓아가기 위해 더 빨리, 더 먼저 뛰어가고자 한다.
그러나 '무슨 일인가요? 모르겠는데요. 무슨 줄인가요? 잘 몰라요. 얼마나 기다리게 될까요? 글쎄요.'.
그 끝에 무엇이 있기에 이렇게 달리고 있는가, 라는 쉬운 물음에는 다들 답변하기 어려워한다.
그저 다들 뛰고 있길래, 뒤처지면 안 될 것 같길래, 우리는 뛰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또한 생뚱맞게 '코끼리 삼겹살'을 위해 줄을 서 있지는 않은가?, 자문해보자.
유치원을 나오고, 초등학교를 나오고, 중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를 나오고, 대학교를 나오고.
꿈이 없다는 아이들을 비판하는 시대지만 사실 그들의 꿈을 앗아간 건 다름 아닌 사회이다.
같은 쳇바퀴를 돌게 하면서 다양성을 추구하다니, 누가 봐도 웃긴 일이 아닌가.
그러나 분명 어렸을 땐 다들 지금은 잊어버린 꿈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지구 정복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나는 그런 꿈들이 시의 중간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그 꿈은 어릴 적부터 나와 자랐기에 나를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알아보지 못한다.
'지난번 만났을 때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네요.', 다른 모습에도 꿈은 나를 알아본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줄을 선 나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기에
어디서 본 듯한 사람(꿈)이지만 끝내 이름조차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백세시대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우리 수명은 현저하게 늘어 오랜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물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아닌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지만 정원은 300명밖에 되지 않는 '코끼리 삼겹살'을
위해 줄을 서지 말고 나만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는 '꿈'을 위해 줄을 서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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