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플레이/할머니의 케이크] 할머니가 잊을 수 없었던 건
왓챠플레이 숏숏애니 <할머니의 케이크>를 보고
어느 날, 왓챠플레이 어플을 실행시켜보니 '숏숏애니'라는 카테고리가 눈에 띄었다.
알림에 들어가 알아보니 '애니메이션부터 영화까지, 왓챠가 심혈을 기울여 발굴한 단편 작품들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프로젝트'라고.
대부분 플레이 타임이 몇 분 이내였기에 부담 없이 보기 좋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았다.
대사 하나 없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던 <할머니의 케이크>.
지금은 볼 수 없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기에 부족함 없는 4분이었다.
시골집, 28일에 표시된 달력,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딸기 케이크를 그리고 있는 여자아이.
아이가 딸기 케이크를 원하는 날, 아마도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이 분명했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그 날의 풍경,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빨랫줄에 당근과 효자손이 걸려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처음엔 아이의 장난인가, 싶었는데 미역국에 들어간 속옷과 양말을 보는 아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첫 번째 추리는 빗나간 모양이다.
그리고 이내 케이크를 사러 간 할머니가 케이크를 버스정류장에 두고 온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건망증이구나.
어린 시절의 아이는 알 턱이 없었다. 생일날 케이크를 먹지 못하는 자신보다
케이크를 샀음에도 자신의 실수로 손녀에게 케이크를 주지 못한 할머니의 마음이 더 속상하다는 걸.
잔뜩 토라진 손녀에게 할머니는 '자신만의 케이크'를 만들어 선보였다.
그 맛이야 말해 무얼 하겠는가. 잔뜩 화가 난 손녀가 화가 다 풀려버릴 정도이니.
그렇게 두 번, 세 번, 아이의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같은 사건이 반복된다.
매번 속상해하는 할머니와 달리 아이는 이제 오히려 '할머니의 케이크'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더는 잊지 않기 위해 케이크 상자에 끈을 묶어 손목에 맨 할머니가 사 온 딸기 케이크보다
'할머니의 케이크'가 먹고 싶어진 어른이 됐으니깐.
시간이 흐른 뒤 빨랫줄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여기 있어선 안 될' 물건들이 걸려있었다.
할머니의 건망증이 심해졌다는 뜻
하지만 그런 할머니가 절대 잊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손녀의 생일, 그리고 손녀가 먹고 싶어 했던 딸기 케이크.
많은 것을 잊어도 손녀에 대한 것만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할머니,
그 사랑을 알기에 손녀도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와 '함께' 나누기 위해 한 숟가락을 건넨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갈치조림.
애호박을 크게 썰어 칼칼하게 끓인 갈치조림,
나에게는 그 갈치조림이 할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요리인 것 같다.
먹을 때는 그저 맛있다, 라며 밥그릇을 비우기에 바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모두 할머니의 사랑, 함께한 추억인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흉내낼 수 없는 오직 손녀만을 위한 할머니의 사랑,
그것이 요리로 탄생해 오래도록 마음 속에서 끓어가는 것이다.
덧,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요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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