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해서 좋은 영화

97년생인 나에게 권상우는 드라마 남자주인공으로 먼저 얼굴을 알렸던 것 같다. 천국의 계단, 슬픈연가, 신데렐라맨...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추억의 드라마 속에서 주연을 맡아 그 유명한 소라게 짤을 생성하기도 했는데 자신의 그 모습을 다시금 패러디한 장면이 나오는 작품이 바로 이번 영화 [스위치]다. (소라게 짤을 알고 있다면 웃음 포인트가 늘어날 것이다.) 한창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드라마들이 방영될 때는 워낙 어린 시절이라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잘 떠오르지 않지만 권상우가 '유명하다'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같은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내가 그의 매력에 확실하게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탐정 : 더 비기닝]부터라 단언할 수 있다. 단숨에 [탐정 : 리턴즈]까지 보고 나니 비슷한 결의 영화같은 [스위치]가 반가울 수 밖에. 여주인공 또한 이민정(의 남편이 이병헌이라는 사실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으로 탄탄한 라인업이었지만 1월 4일에 개봉하여 벌써 넷플릭스에 넘어온 걸 보면 흥행에는 다소 실패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코믹영화는 잠시 뇌를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웃다가 또 울면서 보기 좋지 않은가? 뻔한 흐름에 뻔한 결말이지만 그렇기에 좋은 영화다.

실제로 싸가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알 수 없으니 그 점은 깔끔하게 배제하고 유명한 대한민국 배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번 [스위치]에서의 '박강' 역할은 권상우에게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었던 배역이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톱배우가 연기하는 톱배우였으니깐 말이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특이한 택시를 타게 되면서 일 년 동안 어쩌면 자신이 살았을 수도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오디션을 그대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뉴욕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그녀를 잡으러 가야 하는가. 실제로 '박강'이 선택한 건 전자였으나 일 년 동안은 후자로 선택했을 때 펼쳐질 일을 체험하게 된 것이다. 부와 명예, 명성, 그 어느것 하나 없지만 그리웠던 수현과 쌍둥이 남매까지 낳아 살아가는 건 매일 아침 이 세계가 깨지지 않게 빌 정도로 행복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늦지 않게 뉴욕에서 한국으로 와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수현을 찾아가 꿈을 실현시키는데 뒤바뀐 인생 속에서도 다시금 연기로 조명받은 걸 보면 괜히 무명 연극배우에서 톱배우가 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기에 이런 결말이 나쁘지 않았다. 그저 운으로, 한순간의 선택 하나로 뒤바뀔 정도의 운명이었다면 두 사람의 만남을 응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부와 명예, 명성, 거기에 사랑까지 쟁취했으니 그렇지 않았다면 질투날만하지 않겠는가.
사람은 살아가면서 매번 선택의 순간에 부딪힌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그 때 그랬으면 어땠을까?'라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그로 비롯된 후회를 할지 안할지 또 알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현실에서는 [스위치] 속 '박강'처럼 또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없으니 그저 현재에 충실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진부하다, 흔한 클리셰다, 라는 후기들이 많지만 뻔해서 좋은 영화도 있지 않겠는가. 그저 걱정없이 즐기면 되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본다면 더 좋을만한 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명작이라고는 소개할 수 없겠지만... 이런 B급 영화들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강'과 그의 아버지 이야기에 좀 더 세밀하게 파고들었다면 감동적인 요소가 진해지지 않을까 싶어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면 러닝타임이 늘어나서 지겨울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요즘 2시간 넘어가는 영화는 재생하기가 겁나더라...)
- 평점
- 7.3 (2023.01.04 개봉)
- 감독
- 마대윤
- 출연
-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 박소이, 김준, 김미경
* 찾아보니 역시나 손익분기점은 145만, 누적 관객수는 42만. 톱스타였던 그가 평범한 가정의 아빠로 깨어나는 예고편을 보고 처음엔 예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미쓰 와이프]처럼 바디체인지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미쓰 와이프]처럼 조금 더 강력한 울림이 없었던 것 같은데(파도 치지 않는 잔잔한 물결같달까.) 그 결과는 숫자로도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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